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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15] 바둑에서 왜 ‘반집승’ ‘반집패’라고 말할까

2026-06-16 06:19:09

 신민준 9단이 15일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2국에서 돌을 놓고 있다. [한국기원]
신민준 9단이 15일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2국에서 돌을 놓고 있다. [한국기원]
15일 전북 전주시 왕의지밀에서 열린 제31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2국. 중국의 왕싱하오 9단은 신민준 9단을 맞아 328수만에 흑 ‘반집승’을 거뒀다. 이틀 연속 ‘반집’으로 희비가 갈렸고,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반집은 말 그대로 집 차이가 0.5집이라는 뜻이다. 반집승(半집勝)의 어원은 비교적 단순하다. 절반을 뜻하는 ‘반(半)’, 영역을 세는 단위 ‘집’, 그리고 승리를 뜻하는 ‘승(勝)’이 합해진 말이다. 반집패는 패배를 뜻하는 '패(敗)'가 '승' 대신 들어간 것이다.

바둑에서 반집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덤 제도와 관련이 있다. 원래 바둑은 흑이 선착의 이점을 갖기 때문에 백에게 일정한 보상을 주는데, 이를 ‘덤’이라고 한다. 현재는 보통 6.5집이나 7.5집처럼 0.5집이 포함된 덤을 사용한다.
이 0.5집의 목적은 무승부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백의 덤이 6.5집인데 계산 결과 흑의 집이 백보다 정확히 6집 많다면, 최종 결과는 백이 0.5집 앞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승패가 반드시 갈리게 된다. 그래서 현대 바둑에서 반집승은 대개 실제로는 양측의 집 차이가 거의 없음을 의미하며, 가장 박빙의 승부를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참고로 일본어에서는 ‘반목승(半目勝, はんもくがち)’, 중국어에서는 ‘반목승(半目胜)’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목(目)’은 한국 바둑의 ‘집’에 해당하는 단위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반집승, 반집패라고 부르게 됐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반집승, 반집패라는 말은 1970년대부터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74년 10월23일자 ‘청룡기왕(青龍棋王)에 정창현(鄭昌鉉)7단’ 기사는 ‘총호선(總互先)풀리그로 진행된 본선대국에서 정(鄭)7단은 두번째로맞은 하(河)5단과 반집승을거두어 귀중한 승점을 따낸뒤계속 연승,무패의기로을 남겼고 하(河)5단은 3승2패의동률로 윤(尹)7단과 재대국,2위에 올라섰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통해 반집승이라는 용어는 최소한 1970년대 중반에는 이미 한국 바둑계에서 통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반집승은 일본어 ‘半目勝(はんもくがち)’을 직역한 표현이 아니라, 한국 바둑계가 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시킨 말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1970년대는 한국 바둑이 일본 바둑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시기였고, 기사에 나오는 ‘총호선(總互先)’ 역시 일본식 바둑 용어이다. 따라서 개념 자체는 일본의 반목승(半目勝)에서 왔지만, 한국 기사에서는 이를 반집승으로 번역해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둑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는 대마가 잡히는 장면도, 화려한 공격도 아니다. 오히려 끝내 모든 계산이 끝난 뒤 나타나는 숫자 하나가 더 큰 울림을 남길 때가 있다. 바로 이것이 반집승과 반집패다.

바둑판 위에 수백 수를 두고도 마지막 결과가 반집 차이라면, 그 한 판은 사실상 동등한 실력이 만들어낸 예술에 가깝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반집으로 이긴 사람은 승자가 되고, 반집으로 진 사람은 패자가 된다. 기록에는 단지 1승과 1패만 남을 뿐이다. 관전자들은 승자를 기억하지만, 패자는 아쉬움을 곱씹는다.

흥미로운 점은 반집패를 경험한 기사들의 이야기다. 많은 프로기사들은 큰 차이로 진 대국보다 반집패를 더 오래 기억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한 번의 실수, 의미 없이 소비한 한 집, 끝내기에서 놓친 한 수가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 그 수만 달랐어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반집패는 실패라기보다 가능성의 증명이다. 상대와 거의 대등하게 싸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열 집 차이의 패배는 실력 차이를 인정하게 만들지만, 반집패는 "다음에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긴다. 그래서 반집패는 가장 아픈 패배이면서 동시에 가장 값진 패배이기도 하다.

우리 삶도 비슷하다. 시험, 취업, 사업,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결과만 본다. 합격과 불합격,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그러나 세상에는 사실상 반집 차이의 결과들이 많다. 누군가는 간신히 기회를 잡고, 누군가는 아주 작은 차이로 놓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집으로 이겼느냐, 졌느냐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한 수 한 수를 쌓아 올렸느냐이다. 반집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음 판의 반집승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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