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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58] 씨름 기사에서 왜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많이 등장할까

2026-04-18 06:34:53

 1980~~90년대 씨름판의 황제로 군림한 이만기
1980~~90년대 씨름판의 황제로 군림한 이만기
‘용호상박(龍虎相搏)’, ‘막상막하(莫上莫下)’, ‘백중지세(伯仲之勢)’, ‘파죽지세(破竹之勢), ’‘기세등등(氣勢騰騰)’, ‘일촉즉발(一觸卽發)’ 등. 씨름 기사에서는 힘겨루기, 역전, 기세, 승부의 긴장감 등을 강조하기 위해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자주 쓴다.

고사성어는 한자어로 ‘옛 고(故)’, ‘일 사(事)’, ‘이룰 성(成)’, ‘말씀 어(語)’가 합쳐진 말로 ‘옛날 이야기나 사건에서 유래해 굳어진 말’이라는 뜻이다 .고사성어는 단순히 오래된 말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 인물의 일화, 고전 문헌 속 이야기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사기‘, ’한서‘, ’논어‘ 등 중국 고전의 역사 속 인물의 행동이나 일화나 전쟁, 정치, 인간관계를 담은 사건들을 짧은 말로 압축돼 사용하는데, 오늘날 하나의 관용 표현처럼 쓰인다.

고사성어라는 용어 자체는 의외로 아주 오래된 말은 아니다. 고대 중국에는 고사성어라는 표현이 없었다. 대신 관용적으로 굳어진 말이라는 뜻인 ‘성어(成語)’와 옛 이야기나 일화라는 뜻인 ‘고사(故事)’라는 말을 썼다. 두 개념이 따로 존재했지, 합쳐진 단어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조신시대 때 두 단어를 각기 사용했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고사와 성어라는 단어가 국역으로 4회 검색된다.
고사성어라는 말은 근대 이후, 대략 19~20세기 무렵 중국과 일본에서 학문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를 구분하기 위해 고사성어라는 결합 표현이 만들어졌다. 이후 이 용어가 한국과 일본 교육·출판 분야로 들어오면서 널리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고사성어는 전통적인 말이라기보다 전통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 근대에 만들어진 분류 용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씨름 기사에서 유독 고사성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단 몇 초 만에 승부가 갈리는 장면을 독자에게 충분히 전달하려면, 압축적이면서도 함축적인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씨름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다. 샅바를 잡고 미묘하게 중심을 흔들고, 순간적인 판단으로 기술을 걸어 승부를 뒤집는다. 이 복합적인 흐름을 일상적인 문장으로 풀어내면 장황해지기 쉽다. 반면 용호상박이라는 네 글자는 두 강자가 팽팽히 맞서는 긴장감을 한 번에 환기한다. 파죽지세는 연승의 기세를, 일촉즉발은 숨 막히는 정적을 단번에 그려낸다. 고사성어는 설명이 아니라 장면 그 자체가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씨름이 지닌 전통성과 맞닿아 있다. 씨름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민속 스포츠다. 과거 장터와 마을 잔치에서 벌어지던 씨름판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녔고, 그 문화적 배경에는 한문 중심의 표현 전통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고사성어는 그러한 역사적 결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언어다. 현대 스포츠 기사 속에서도 고사성어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씨름 자체가 이미 ‘옛것과 지금’을 잇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본 코너 1751회 ‘왜 '씨름'이라 말할까’ 참조)

독자의 이해 방식 역시 중요하다. 고사성어는 짧지만 강한 이미지로 기억에 남는다. ‘역전승(逆轉勝)’보다 ‘전세역전(戰勢逆戰)’이, ‘치열한 싸움’보다 용호상박이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 이유다. 특히 스포츠 기사에서는 속도와 임팩트가 중요한데, 고사성어는 이 두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킨다. 독자는 긴 설명을 읽지 않아도 상황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모든 표현이 고사성어로 채워질 필요는 없다. 과도한 사용은 오히려 문장을 딱딱하게 만들고, 독자의 거리감을 키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지점에서의 활용이다. 순간 흐름이 바뀌는 장면, 또는 승부의 무게를 강조할 때 고사성어는 가장 빛난다.
결국 씨름 기사에서 고사성어가 자주 쓰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짧은 승부를 길게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다. 네 글자의 언어는 모래 위에서 벌어진 치열한 한 판을 독자의 머릿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 씨름의 순간은 지나가지만, 고사성어는 그 순간을 붙잡아 의미로 남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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