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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84] 당구에서 왜 ‘삑사리’라고 말할까

2026-05-14 06:08:33

여자프로당구 전설 김가영이 큐로 조준하는 모습
여자프로당구 전설 김가영이 큐로 조준하는 모습
당구장에서 “아, 삑사리 났네”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거의 공식 용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작 당구 교본에는 ‘삑사리’라는 기술 용어가 없다. 공식 용어는 영어 ‘cue miss’이다. 큐 끝의 팁이 수구를 정확히 맞히지 못해 미끄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본 코너 1774회 ‘당구용 막대기를 왜 ‘큐(cue)’라고 말할까‘, 1777회 ’당구에서 왜 ‘큐볼’이라 말할까‘ 참조)

삑사리는 사실 당구장에서만 쓰이던 말이 아니다. 노래를 부르다 음이 틀어졌을 때도 “삑사리 났다”고 했고, 마이크가 찢어지는 잡음을 낼 때도 같은 표현을 썼다. 즉, 원래는 “의도한 흐름에서 벗어나 우스꽝스럽게 틀어진 소리”를 뜻하는 생활 언어였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음악에서 악기를 잘못 사용할 때 이 말을 쓴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99년 8월26일자 ‘‘김복수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압도적 好演‘ 기사는 ’2악장 도입부 중요한 몇마디에서 ‘피콜로 클라리넷’ 삑사리는 아쉽다. 이는 병가상사(兵家常事)다. 그 티를 지적하기에는 맑고 수려한 부분이 더 크고 압도적이었다. 개인적으론 3악장 아다지오에서 첼로파트가더 리치했으면 싶다‘고 전했다.
당구 용어 ‘큐미스’는 영어 cue miss를 음차한 말이다. 당구 큐대를 의미하는 ‘cue’와 ‘빗맞히다’ ‘놓치다’라는 의미인 ‘miss’의 혼성 표현이다. 문자 그대로는 ‘큐가 빗나갔다’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보통 한 단어처럼 붙여서 ‘miscue’라고 표기한다.

흥미로운 건 이 단어의 구조다. 영어의 miscue는 사실 당구 이전부터 존재했다. 원래는 연극이나 공연에서 쓰이던 말이었다. 배우가 자기 차례를 놓치거나, 잘못된 신호(cue)를 받았을 때를 뜻했다. 다시 말해 ‘큐를 잘못 받다’는 의미였다. 이 표현이 당구로 넘어오면서 뜻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이 영어 표현이 직접 정착하기보다, 큐 끝이 미끄러질 때 나는 특유의 소리를 따라 삑사리라는 토착 표현이 더 널리 퍼졌다. 한국 당구 문화에서는 기술 용어인 큐미스보다 생활 언어인 삑사리가 훨씬 생생하게 살아남은 셈이다

삑사리의 정확한 국어학적 정설은 아직 없다. 다만 대체로는 의성어 ‘삑’과 접미적 표현 ‘-사리’가 결합해 생긴 속어로 본다. 한국어에서 ‘삑’은 원래 기계음이나 금속 마찰음, 또는 음이 틀어질 때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다. ‘-사리’는 표준 접미사라기보다 속어적 변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한국 구어에서는 어떤 상태를 우스꽝스럽거나 과장되게 만들 때 뒤에 리듬감 있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다. 삑사리는 문자 그대로 뜻을 분석하기보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굳혀 쓴 생활 언어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이 말이 당구장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1970~80년대 대중음악·공연계에서 먼저 널리 쓰였다. 이 표현이 당구장에서 쓰이게 된 건 큐미스 순간 나는 특유의 날카로운 마찰음이 마치 음향 장비의 ‘삑’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큐미스가 단순히 초보자의 실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로 선수들도 극단적인 회전을 시도하다가 삑사리를 낸다. 오히려 고난도 기술을 욕심낼수록 큐 끝과 수구의 접점은 위험해진다. 그래서 삑사리에는 묘한 인간미가 있다. 완벽해 보이는 선수도 한순간 “삑” 소리와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당구가 결국 물리학만이 아니라 감각과 심리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삑사리라는 말이 살아남은 이유는 정확성보다 공감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소리를 내봤고, 그 민망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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